난 참 메마른 사람일지 모른다. 내 일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고등학교를 함께했던 친구가 하늘나라로 갔을 때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못했다. 떠나보낸 사람과 가진 유대가 적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알게 모르게 쌓인 원망때문일까? 무엇이 되었던 같은 사람으로서 오고 갔던 감정속에 앙금이나 미움이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눈물은 흘리지 못했지만, 고민의 가는길에 고통이 적었으면, 그리고 후회가 적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난 순수를 찬미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오래토록 수호하고 싶다. 어린 아이의 떼 묻지 않은 질문, 대가가 없는 행동, 그리고 열정과 사랑.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것이 얼마나 되찾기 어려운지, 그리고 지켜내기 어려운지 새삼 느낀다. 되찾을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순진하지 말되 순수하자.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 현실과 타협한 이상주의자의 좌우명이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 느낄 수 있듯, 사람에게서 순수함을 느끼기는 어려운 듯 하다. 어느 인간이든 생애 중 순수함은 스쳐가나, 경쟁이 난무하는 게임 속에서 시기와 질투가 주는 감정은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큰 무기이다. 그 유혹을 참기에 이 세계는 때론 무자비하고 가혹하다. 인간은 어느정도 순수를 포기한 공포의 균형으로 동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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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메마른 세상속에서 순수를 보았다. 17년 전, 우리 집에 온 이 친구는 정말 작았다. 초등학교 6학년, 인공적으로 만들기도 어려울 것 같은 희고, 검은 색으로 섞인 털을 가진 이 작은 생명체는 나에게 신비로움 감정을 주었다. 생기있는 털에 똘망한 눈망울은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애착이 갈만큼 예쁘고 귀여웠다. 검은 털이 더 눈에 띄어서 일까? 우리는 그 친구에게 “까미”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리고 너는 내게 “순수”가 되었다.

나는 한번에 두 개 이상을 잘 하지 못한다. 자격지심으로 가득찬 학창시절을 보내던 나는, 내가 갈망하는 것을 얻는데에만 집착했다. 경쟁심으로 가득한 나날이 박복됐다. 밥 한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고, 목욕한번 제대로 못시켜주었다. 그렇게 흔한 산책한번 제대로 못해주었다. 기숙학교를 다닌 탓에 고등학교 3년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재수 학원 1년, 대학 4년을 보내며 한 인간의 반 평생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침대 구석에서 나와 함께 잠을 청했다. 눈이 보이지 않을 때도 냄새를 맡으며 얼굴을 손에 올렸다. 귀가 들리지 않을 때도 몸을 맞대어 나를 확인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주지 못한 내게 사랑을 주었다. 

난 나약한 인간이었다. 이가 다 빠지고, 눈이 안보이고, 귀가 안들리며, 전신이 마비가 오는 너의 모습을 보는 것을 애써 피했다. 그렇게 똑똑하던 네가 집구석에 용변을 보고, 가끔 멍하니 서있는 너를 보며 짜증을 냈다. 이유없이 울부짖을 때면 조용히 하라고 소리도 쳤다. 내가 기억하는 너의 모습은 그게 아니라는 듯, 믿고 싶지 않다는 듯, 외면했다. 

그리고 오늘, 너의 본 모습을 마주했다. 후각, 촉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성하지 않은 너룰 보았다. 근처에 손을 가까이 가는 것도 몰라 흠칫 흠칫 놀라는 너를 보았다.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화장실을 찾으러 가는 너를 보았다. 매일 쿠션에 몸을 기대 잠만 청하는 너를 보았다. 그리고 너의 마지막을 바라보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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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이 너무나 당연한 말을 몸으로 느끼기에 나는 너무 작은 사람이었다. 주사 바늘이 들어가고, 그 짧은 순간에 생명의 전원을 끈다는 사실이 허무하고 무서웠다. 나에게 순수를 보게 해준 그 눈의 빛이 끊어진 다음에도 남은 너의 온기는, 내가 앞으로도 그러한 따스함을 가지고 살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그렇게 나는 17년의 나에게 사랑과 순수를 전해준 친구이자 가족을 하늘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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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야, 성인이 된다는 게 이런걸까?

더이상 외면하지 않고 마주한다는 거 말야.

마지막에서야 너를 마주하고,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었어.

너에게 배운 사랑과 순수함을 잊지 않을게.

나도 누군가에게 너와 같은 마음을 전달할 수 있게 노력할게.

17년 간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우리 가족에게 즐거움을 주어서 고마워.

모자른 내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어서 고마워.

사랑했다.

24.10.24 

영원한 너의 친구 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