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시작되었다. 어린이날, 주말, 그리고 대체휴일로 지정된 근로자의 날까지 총 4일의 달콤한 휴일이 나를 반겼다. 첫 직장인으로서의 기나긴 연휴는 신입사원의 긴장을 잠시나마 늦춰줄 수 있는 쉼터와 같았다. 대학 시절, 함께 공부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동료들과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나 다양한 얘기를 하는 도중, 근무시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각기 다른 직장에 몸담고 있는지라 다른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8-17, 10-19 등 다양한 종류들이 있었다. 직장인들에게 민감한 주제인 포괄/비포괄 임금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올 즈음, “너는 언제 출근해?”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른 아침에 시작해서 늦은 저녁에 끝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친구가 말했다. “쟤는 일만 해요.”
자주들은 말이다. 잘 알고, 오래된 친한 친구이기에 그 말이 어떠한 감정이 들어가지 않았음은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내가 본 사람들에게서 저 말이 나왔다면 어땠을지를 생각해보았다. 비아냥대는 경우가 많았고, 사회성이 모자라다 판단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들이 상처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돌아오는 길에도 그 말이 뇌리에 맴돌았다. 일도 좋지만 취미를 가져야 한다. “취미는 조직 생활에 있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업을 성공하려면 하는 것이 좋다”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문득 “취미가 뭐예요?”라는 말에 모두가 신기해하고, 멋있어하는 무언가를 답하지 못하는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다. 내가 잘못된 것일까? 나도 모르게 이런 내가 되어있다는 것이 아쉬웠고 안타까웠다. 나는 왜 이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렇게 옛날 생각을 해보았다.
왜? 왜 하는 거야?
난 호기심이 많은 아이 었다. 행동에는 명백하건 감춰져 있건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왜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야 하는지? 왜 효도를 해야 하는지? 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지? 왜 이 문제는 이런 식으로 풀어야 하는지? 지금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좋게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내가 어릴 적에 이런 질문을 하면 보통의 어른들은 그 이유를 납득할 정도로 설명하지 못했다.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어”, “그냥 외우면 돼”. 왜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을 행동해야 한다는 것에 큰 거부감을 느꼈다.
그나마 학창 시절 내가 좋아했던 것은 수학과 과학이었다. 기본 공리를 기반으로 논리를 쌓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매력이었다.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하지만 이런 학문적 흥미만을 가지는 것으로는 내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없었다. 입시의 문을 통과해야 했고, 여전히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 나로서는 공부가 고문이었다. 주변 친구들의 좋은 성적과 비교는 나에게 큰 고통으로 찾아왔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만의 이유를 찾지 못했고, 그렇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운이 좋게도 축복받은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한 번의 기회를 더 갖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나 때문에 발생하는 기회비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 나의 책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단순히 나의 동기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죄송하고 한심했다. 세상은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배윘다. 그리고 나만의 이유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입시에 성공해야 하는 이유를 외부, 즉 부모님에게 죄송하다는 감정으로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그 이유가 자신의 이득으로 직결되지 않을 경우 이 모멘텀이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내가 가지고 있던 대학의 로망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돈”이었다. 그리고 이 대학생 신분으로 가장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고액 과외”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렇게 가장 단가가 높은 수학 과외를 여러 개 하여 내가 원하는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 것을 이유로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 그 목표를 이뤘다.
호수에 던져진 돌
오만은 성공 후에 찾아온다고 했다. 가장 못하는 수학 과목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받은 나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대학도 어느 정도 원하는 곳에 진학했고, 이제 과외만 하면 된다. 하지만 오만했던 탓일까. 시골이었던 우리 동네에서 학생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강의자료, 수업 방식들 모든 것이 준비되었지만,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이제는 영업의 문제였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수학 과외를 해주는 형/오빠가 아닌 선생님으로서의 자질, PR 능력 등이 필요했다. 당장 사람을 구할 수 없으니, 조금 먼 시내까지 나가 파트타임 학원 강사를 뽑는 곳에서 활동해보기로 했다. 여러 군데 면접을 보았고, 고2 대상 수학 강사로 활동할 수 있었다. 여러 명 앞에서 어떻게 하면 많은 정보를 쉽게 설명할지, 어떤 요소는 생략하고 어떤 요소는 부각할지, 어떻게 시각화하여 보여주어 빠르게 이해시킬지, 어떤 비유를 사용할 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또 학생들의 표정을 읽고 지루한지, 집중이 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대화 연습도 많이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가르친 학생들의 결과가 나왔다. 성적이 많이 올랐고, 운이 좋게 그중 한 친구와 개인 과외를 하게 됐다. 입소문이 퍼져 다른 학생들도 소개받아 그렇게 월 4명 이상의 학생과 수업을 하는 기회를 가졌다. 내가 준비했던 것이 시장에 통한다는 것이 굉장히 짜릿했다. 그렇게 6년이 흘렀다. 원하는 캠퍼스 생활, 부모님께 손 빌리지 않고 원하는 캠퍼스 생활을 하기 위해 시작한 과외는 어느 순간부터 이유가 되지 않았다. 학생으로서 많은 돈을 만져보았지만, 크게 사용하고 싶은 곳도 없었고, 엄청나게 즐겁지도 않았다. 어느샌가 나에게 과외는 돈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과외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쯤이었다. 스승의 날 기념으로 학생을 만났다. 수업 시 친구처럼 얘기하며 서로의 많은 고민들을 얘기했던 학생이었다. 사람 문제, 성적 문제 등 많은 고민을 얘기했던지라 특별히 마음에 가는 친구였다. 오랜만에 만나 밥을 먹는 중, 어떻게 생활하냐는 질문에 “엄청 바쁘게 살아요”라는 말을 하더라. “와, 진짜 열심히 사는구나”라는 말에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만나고 많이 달라졌어요.”
스승의 날이라는 의미가 부여돼서 일까? 가슴에 무언가 뭉클함이 밀려왔다. 내가 학창 시절 겪었던 크고 작은 괴로움들이, 내게 깨달음을 준 대학생활의 일상들이, 치열하게 하루를 살고 있었던 나의 시간표가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위로로, 또 다른 의미로는 자극으로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큰 돌이 아닌 작은 돌로도 호수에 파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팀 그리고 결과
누군가를 가르쳤던 경험 외에 대학 생활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경험을 꼽으라면, 역시 동료들과 함께 나갔던 대회이다. 비전공자 4명이서 주말마다 데이터 분석을 하겠다며 공부했고, 특정 단체의 데이터를 받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대학생이 뭘 알겠는가. 당연히 말아먹고 1년 동안의 시간을 아쉬워했다. 가진 건 패기밖에 없던 우리는 제대로 한 번 더 도전해보기로 했고, 7월에 있던 그 당시 가장 컸던 데이터 분석 대회에 참가했다. 처음으로 장려상을 수상했다. 우리가 해냈다는 생각에 정말 행복했다.
성공했다는 생각에 이 길에 방향이 보인다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는 “좋은 스펙을 쌓아야 한다”라는 이유로 가득했고, 다시 그 팀원들을 모아 대회에 참가하자고 제안했다. 내 목적을 위해 잠을 줄여가면서 완성도 높은 자료, 발표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전/오후에는 인턴 생활, 저녁에는 과외 선생님, 밤에는 대회 준비로 하루를 보냈다. 이런 빡빡한 생활 속에서 나는 점점 예민하고 조급해졌다. 그리고 이런 감정상태는 팀원들을 다그치는 형태로 표현되었다.
치열하게 준비한 결과, 준비한 대회에서 수상까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지쳐갔다.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 의문이 쌓였다. 단순히 수상 실적을 위해 하는 것인지, 즐기면서 하는 것은 맞는지, 나는 내 소중한 사람들을 다그치면서까지 이것을 왜 하고 있는지. 스펙을 만들기 위한 이유로 시작했으나, 어느새 이것이 나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만을 위한 행동은 나에게 행복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곧 궁극적으로 내가 무엇을 목표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
언제나 그랬다. 좋은 성적을 받으면 부모님께 칭찬을 받으니까, 착한 아이가 되니까. 좋은 대학에 가면 대학의 이름을 얻으니까. 좋은 스펙을 쌓으면 좋은 직장에 가니까. 모두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 역시 맞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를 이뤘을 때 느끼는, 순간적인 짜릿함. 하지만 그뿐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닐 때, 열정과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마음은 곧 무기력과 허무함으로 채워진다.
취업 이후도 같은 마음이었다. 나 역시 당장의 생존을 위해 먼저 취업한 지인들을 보며 부러워한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내가 그 위치가 되어보니, 이것 역시 큰 행복은 주지 못했다. 커다란 사옥, 나의 자리, 학생 때는 만져보지 못했던 돈, 뿌듯해하시는 부모님의 모습 등을 마주하면서 내가 해냈다는 뿌듯함은 있었지만 목표를 달성한 상황에 가지고 있던 동기는 사라져 버렸다. 앞으로도 이렇게 단기적인 목표만을 세우면서 몰입하고 무기력해지기를 반복하기는 싫었다. 삶이라는 것에 “생존”말고 다른 가치,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죽기 전까지 항상 따를 수 있는 마음의 이정표를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우상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했는지 찾아보았다.
어릴 적부터 나의 우상들은 기업가였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모습은 소시민적으로 살고 있는 내게 대리만족의 대상이었다. 그 과정에서 노력이 보이지 않음에도, 세상의 멸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행하는 모습은 언제나 내가 힘들고 하기 싫을 때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했다. 그들은 어떻게 그 동기를 가질 수 있을까. 무엇이 영감을 주었을까. 그 추진력을 가지게 하는 마음가짐을 너무 갖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들도 이러한 고민을 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내가 태어나서 무엇을 하고 죽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우상들은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겠다. 인간을 위해 옳은 일을 하겠다.”와 같은 고차원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돈을 버는 것은 그들에게 목표가 아니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나의 경험에 빗대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 역시 그 정도의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큰돈을 만져보고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이 돈이라는 것이 주는 행복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크고 지속적인 만족감은 내가 세운 목표를 내가 해냈을 때,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것은 내 행동, 능력, 가치가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그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에 찾아왔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목표를 세우고 계획하고 실천했던 그 하루하루가 그 사람의 머릿속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함이었다고 생각되었다. 그 모든 힘든 것들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그렇게 고민하던 날들이 내 팀원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며 모두 씻겨나갔다. 나를 위한 무언가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나에게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작은 울림일 뿐이라도
여태껏 나의 우상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들이 특별해서 가능한 거야. 나 같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태어나지 않았어.”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너무 특별했다. 어린 나이에 제품을 만들고 창업을 했다. 시대에서 요구하는 필요한 제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세상이 자신의 판단대로 변화한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커 보이는 목표들이었다. 그런 것들만이 세상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고, 나는 사회의 하나의 부품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시간을 살면서, 그것만이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님을 몸소 배웠다. 비록 태어난 배경, 학력, 자라난 환경 등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라는 호수에 던져지는 하나의 돌이다. 모두가 그 pool에 나를 시험하며 뛰어든다. 돌의 크기가 차이 날 수 있지만 결국 호수에 던져지면 파문이 일어난다. 그 일렁임은 다른 돌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그 정도는 가까울수록 더 강하다.
그래서 나는 하루하루 허투루 살 수 없다. 나는 나와 연결된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람이다. 그 책임감이 나를 나아가게 하고, 나에게 행복을 준다. 그들을 단순히 나의 커리어의 발판으로 삼거나, 이득을 위해 포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궁극적인 행복이다.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내 삶에 지속적으로 남는다. 내 능력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그보다 가슴 뛰고 기쁜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나에게 일은 신성하다. 세상에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이다. 거기에 더불어 생존을 가능케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하나의 목표를 가진 동료들과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삶과 연관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최선의 행위이다. 작은 울림뿐일지라도 그 영향을 준다면, 그 책임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쟤는 일만 해요
이제 “쟤는 일만 해요”라는 말은 나에게 “꿈을 위해 산다”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내가 그토록 바라 왔던 우상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제품을 제공하고 신념을 믿은 사람들이 행한 것들은 근본적으로 내가 하는 행동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옳은 것을 포기할 수도 있고, 내면의 유혹에 빠져해야 할 일을 미룰 수도 있다. 그뿐이 아니다. 올바르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결과가 나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순수한 마음, 정직한 태도, 옳은 판단으로 항상 행동한다면, 그 보상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방식을 지금껏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우상으로 바라 왔던 리더들이 멸시와 핍박에도 본인의 철학을 고수할 수 있었던 이유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작은 울림으로 이를 시작해보려 한다. 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 오늘도 누군가에게는 “일만 하는” 하루를 살아보려 한다.